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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A 수험일기

회계사 시험 삼시까지 치르면서 느낀 공부 방향의 변화 (1)

by Alcantara 2022. 3. 4.

 

초시 270점

재시 340점

삼시 420점

 

나는 2018년 9월에 회계원리를 들으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 들었던 회계원리도 회계사, 세무사 학원의 수업이 아닌 전산세무를 비롯한 회계 자격증에 필요한 회계원리 수업이었고,.. 당시만 해도 일단 해보긴 하는데, 정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고 털고 나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회계원리를 들어보니 중급회계도 들어볼까 싶었고 중급회계도 들어보니 수업을 못따라갈 정도는 아니어서 그냥 그대로 쭉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김현식 선생님 중급회계를 시작으로 거의 1년 반을 정말 열심히 공부했는데 막상 시험장에 가니 풀 수 있는 문제가 별로 없더라... 그때 경제학과 세법은 간신히 과락을 면했고, 회계학도 75점이라는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다.

경제학과 세법 모두 40점을 맞았는데, 그때 하나라도 더 틀려서 과락을 맞았다면 더 공부를 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 같다. 과락이라는 점수가 일종의 심리적 마지노선 같은 것이어서... 과락이라는 점수에는 절대로 납득할 수 없을 것 같았고 진짜 이 공부는 나랑 안 맞는구나,.. 나는 회계사가 될 사람은 아닌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만뒀을 것 같다.

초시탈 이후 재시 기간 동안에도 내 공부 방향에 대해서 정말 많은 고민을 했고, 나름 상당히 보완해서 시험장에 들어간 재시 때에도 아주 만족스러운 점수는 얻지 못했다. 340점대였으니 오르긴 올랐는데 그래도 많이 부족했다.

삼시쯤 돼서야 공부량도 많이 쌓이고 내게 맞는 공부와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지 더 깊이 고민하면서 그쪽 방향으로 맞춰 공부를 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누적된 학습량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만...

똑같은 불합격자라도 1년 공부해서 300점 초중반대를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1년 반을 공부하고서도 300점도 맞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나도 돌이켜보면 초시 때만큼 열심히, 열정적으로 공부한 때가 없다. 재시 삼시 때는 내 루틴에 크게 엇나가지 않으면서 적절히 템포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공부량을 이어왔다. 초시 때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아 공부를 했고 그때 제일 열심히 했다.

지나간 시간에 후회는 남기지 말아야 할 것이고 또 부족한 점을 느껴 보완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지만 초시 때의 나에게 지금 내 모습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내가 오랜 기간 공부하며 느낀 아쉬운 점을 이야기한다면 조금 더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2018년 9~10월부터 중급회계 기본강의를 들었기 때문에 1월 종합반보다 훨씬 빠르게 진도를 나갈 수 있었고, 다음연도 5월 말 즈음에 회계와 세법 2차 강의를 수강할 수 있었다. 그렇게 대체로 1월에 시작하는 수험생보다 강의 진도가 앞서 나간다는 안도감에 젖어 내게 진짜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지 점검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당연히 강의도 열심히 듣고, 당일 복습도 하고, 문제도 열심히 외웠다. 근데 그뿐이었다. 부족한 실력을 강의를 들어서, 혹은 더 좋은 해설이 있는 문제집과 요약서를 보면서 해결하려고 한 게 가장 큰 패인이었다.

나는 당시에 기본서라는 물건은 말 그대로 기본 강의를 들을 때에만 필요한 강의용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고 결국 요약서와 문제집을 마구 외우면서 반복 학습해야 시험장에서 문제를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강의를 전혀 듣지 않는 것보다는 듣는 게 나을 수 있고, 문제를 아예 풀지 않는 것보다는 외우기라도 하는 게 나을 수는 있다. 다만 그렇게 메꿔간 실력은 완전히 사상누각이어서 약간의 바람만 불어도 하루아침에 쌓아 올린 탑이 무너질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실력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

2019년 9월 즈음, 재무회계 파생상품 파트가 너무 어려워서 기출 베스트 교재의 문제와 답, 해설을 외우려 해도 도저히 감이 안 잡혀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당시에는 김재호 선생님 고급회계 기본서가 있었고 이걸 볼까 했는데 9월이라는 시기에 기본서를 봐도 되는지 갈등을 했다. 기본서를 붙잡고 있으면 진도를 못 나가는데. 보는 게 맞나?

이런 바보 같은 생각에 객관식 자투리 강의를 들어 2~3일간 수업을 들었다. 당연히 이해도 잘되고 문제도 곧잘 풀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뿐이었다. 그렇게 쌓아 올린 탑은 또 금방 무너졌고 다른 과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부족한 실력을 요약서와 강의로 메꾸려고만 했을 뿐...

초시탈 이후 모 선생님께 기본서를 꼭 보라는 조언을 들을 수 있었고 그때부터 공부방향이 많이 달라졌다. 강의에 의존하기보다는 모르는 내용은 기본서를 꼼꼼히 읽어가면서 여럿 다지려고 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책도 정말 정말 많이 샀다. 나만큼 책을 많이 산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험서뿐만 아니라 대학교수님이 쓰신 책도 여럿 구매해서 봤다. 그중에서는 수험서보다 훨씬 좋은 책도 있었고 다소 아쉬운 책도 있었다. 그럼에도 여러 책을 사서 보니 내게 맞는 책이 무엇인지, 어느 강사의 서술 방식이 더 읽기 편했는지, 최소한 1차 시험 합격을 하는 데까지 필요한 책이 무엇인지도 조금이나마 판단할 수 있게 됐다.

나는 기본강의만 듣고 기본서를 던져버린 것이 너무너무 아쉽다. 초시 1년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너무 허망하게 허비해버렸다. 그 기간을 한점 부끄럼 없이 보냈는데도 턱없이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다. 그럼에도 차마 그만두고 나갈 수 없었던 이유는 이대로 끝내버린다면 시험에서도, 공부에서도 실패한 낙오자라는 이명을 떨쳐내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험 불합격이 너무 무서운 이유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아서 얻은 결과가 너무나 형편없고 그게 곧 나 자신을 나타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내가 회계사 공부에 도전해서 실패해서 다른 길을 찾아 나섰을 때 그 실패한 경험을 온전히 떨쳐낼 자신이 없었다. 모두가 합격할 수 있는 시험이 아니라는 건 당연히 잘 알고 있다. 시험에 합격하지 못해서 다른 일을 했는데, 그게 오히려 더 나은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탈락 후 더 나은 미래라는 결과는 시험공부에 진입했을 때 불합격한 내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없었던 것보다 더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당장은 불합격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이기도 힘든데. 내가 그토록 노력한 결과가 이렇게 허무하다는 걸 받아들이기도 힘든데. 이제 와서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근데 과연 당사자가 그걸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시험을 치르고 난 뒤의 고통이 너무 크니까...

그래서 나는 그만두지 않았다. 아니, 그만둘 수 없었다. 실패한 사람도, 포기한 사람도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시험공부를 시작한 순간 몇 년 뒤 내 모습은 회계사이어야만 했다. 그게 당장 2,3년 뒤는 아니더라도. 그것보다 조금 더 걸리더라도. 3년, 4년 뒤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5년 뒤, 10년 뒤 내 모습은 회계사라는 것에 의문을 전혀 품지 않았다.

이 직업이 내 예상과 다르다거나, 너무 일이 많아서 힘들다거나, 적성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그 모든 이유들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적어도 나는 시험공부를 시작했던 그때의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이 시험을 선택하지 않고 다른 길을 갔을 때의 나보다 더 불행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초시탈 이후의 내게는 두 갈래 길이 있었다.

하나는 1차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선택하는, 회세잼원 2차 강의를 수강하고 연습서를 돌리는 것. 다른 하나는 일단 기본서를 보면서 부족한 점을 찾고, 기본적인 내용은 숙지한 상태에서 2차 강의를 듣는 것.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 선택은 온전히 내 머릿속에서만 나온 게 아니었다. 정말 우연히 모 선생님께 상담을 받았는데 거의 30분이나 되는 시간 동안 통화를 하면서 기본서 회독을 매우매우 강조하셨고 그 덕에 내 고집도 조금 꺾인 것이었다. 9월이 되기 전까지 회세잼원 기본서만 봐도 충분하다고 하셨다. 나는 내 고집을 반만 꺾었기 때문에 차마 그 말을 다 수행하지는 못하고 일부 과목은 2차 강의까지 듣는 기행을 저질렀지만... 그래도 큰 틀에서 공부 방향이 바뀌지는 않았다.

나중에 또 자세히 이 얘기를 풀어내겠지만... 나는 이 시험공부에 진입한 것과 더불어 그 선생님과의 상담 시간이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전과목 기본서를 다시 사서 차근차근 읽기 시작했다.

재무회계는 김재호 선생님 기본서,

세법은 임상엽, 정정운 저 세법개론. 이른바 노랭이라고 불리는 책

재무관리는 김민환 선생님 기본서,

원가관리회계는 임세진 선생님 기본서...

재무회계는 3월 1달간 김재호 선생님 기본서와 연습서를 병행해보니 부족한 점을 금방 찾아 메꿀 수 있었고, 어쩌면 2차 강의를 들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선생님 강의를 들어보고 싶었고 김기동 선생님, 최재형 선생님, 김영덕 선생님 강의 중에서 와꾸가 좋다고들 하는 김기동 선생님 유예 강의를 들었다.

150강이나 되는 긴 강의였지만,... 기본서를 열심히 보고 예습 복습을 꼼꼼히 해가면서 수업을 들은 덕분에 실력은 꽤 많이 늘었다. 다만 늘어난 실력 대비 투입량이 너무 많았던 것 같고 그냥 혼자 기본서와 연습서를 반복해도 됐을 것 같다. 150강이라는 강의 양은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세법은 개론서를 차분히 읽어보니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외우기만 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세법도 법인데, 법이라는 걸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산식으로만 이뤄진 계산 과목이라고만 여겼던 것 같다. 완전 맨바닥인 실력에서 개론서를 읽으니 잘 읽히지도 않고, 강의를 들어보면 어떨까 싶어서 원재훈 선생님 세법 기본 강의를 들었다.

원가관리회계는 4월 중순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원가도 무턱대고 강의를 수강하기 전, 최경민 선생님께 질문글을 남겨 학습 상담을 받았고, 원가를 아예 버렸던 내게 2차 강의보다는 기본서로 진행하는 심화 강의 수강을 추천하셔서 나는 기본서 복습을 하면서 심화 강의를 수강했다.

재무관리는 김민환 선생님 기본서를 봤다. 연습서도 같이 구매는 해봤는데 당연히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기본서를 봤다. 마찬가지로 4월 중순 즈음 김종길 선생님 연습서도 사서 잠시나마 심화 강의를 신청해서 들었는데, CAPM까지 듣다가 내가 절대로 소화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그냥 환불했다.

심화 강의 오티만 들어봐도 기본강의 수강 직후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 상태라는 걸 감안해서 수업한다고 하셨는데 그마저도 나는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그냥 포기하고 기본서를 더 봤다.

 


 

(다음 편에 이어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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