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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서평

문학적 상상력과 소설 읽기의 효용

by Alcantara 2022. 8. 12.

 

 

Poetic Justice, 마사 누스바움

 

 

 
 

 

왜 역사나 전기가 아닌 소설인가? 일어난 일에 집중하는 역사와 달리, 문예작품은 인간 삶에서 일어날 법한 일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저자 마사 누스바움은 정치, 법철학자이면서도 문예비평에 조예를 드러낸 인물이다. 시카고 대학 로스쿨에서 법학과 학생들과 <소포클레스, 플라톤, 세네카, 디킨스를 읽엇다. 문학 작품들과의 연결고리 속에서 우리는 동정과 자비, 공적 판단에서 감정의 역할, 그리고 나와 다른 타인이 처한 상황을 상상하는 데 필요한 것 등에 대해 토론했다>

 

좋은 문학작품일수록 독자에게 가치관의 혼란, 격렬한 감정의 고양, 불안, 당혹스러운 감정을 경험하게 한다. 독자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자신이 굳게 믿었던 전통을 불신하고, 자신의 생각과 의향이 올바른지 의심하고, 지금까지 사회에서 배운 지식을 한 발짝 떨어져 낯설게 보려고 시도한다. 누구도 직면하지 않았던 상황, 보지 못한 관점, 하지 못한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소설은 우리로 하여금 타인의 삶을 산다는 것이 어떤지를 상상하게 하고, 이러한 공감으로부터 얻은 경험은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힘이 되도록 한다. 또한 사회와 환경의 변화무쌍한 특성이 어떻게 공유된 희망과 욕망의 실현에 관계를 맺는지 알게 해준다. 따라서 소설은 훌륭한 정치학 텍스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를 넘어 타인과 사회, 세계를 인식하게 하고 더 나은 세상을 고민하는 정치적 존재로 우리를 이끌기 때문이다. 법과 정의가 강자의 힘에 굴복해버린 시대에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소설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학창시절에는 책 자체를 거의 읽지 않았고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은 더더욱 접하는 일이 드물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는데, 더 나은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내가 속한 환경에 맞는 지식을 체계적으로 수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었던 소설 대부분은 비문학보다는 읽기 편하니까, 쉽고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가곤 했다. 때로는 좋은 소설을 찾아 읽기도 했지만 그 이유는 문장력을 키우기 위해, 혹은 영어 공부를 위해, 단순히 머리를 식히기 위해 읽는 경우가 가장 큰 이유였다. 소설을 추천받을 때 보통은 작가의 메시지나 소설의 내용, 읽고 나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등등의 이야기가 먼저고 그 다음이 작가의 문체, 영어 실력의 향상과 같은 부가적인 효과를 언급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에게는 염불보다 잿밥이 더 와닿았던 것이다. 디킨스, 박경리, G. 마르케스보다는 애덤 스미스나 앨버트 허쉬먼 같은 이들의 책이 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내게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 독자였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들어, 특히 요즈음에는 그런 생각이 편견일 뿐이었다는 걸 많이 느낀다. 시험 발표가 얼마 남지 않은 무더운 여름에 소설 읽기에 더욱 집중하는 이유도 이전과는 달리 소설 작품 자체에 집중하면서 현실의 내가 적용할 수 있는 무엇인가의 답을 찾으려는 것에 있다.

 

헨리 제임스가 말했듯 공적인 삶에서 문학적 상상력의 과제는 ‘그 어떠한 것보다 더 나은 기쁨이 없을 때, 최상의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고귀하고 구현 가능한 경우를 상상하는 것이다.’ 이 최상의 것이 보편적으로 수용되지 않더라도 유지되기를 희망하고, 추한 것 옆에 아름다운 것이 있듯, 조악함과 둔감함 옆에 머물면서 이것이 그 자체 목적으로서 인간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식으로 상상력을 함양하지 않는다면, 사회정의로 이어지는 필수 가교를 잃게 될 것이다.

 

우리 삶은 경계가 없는 바다의 물방울과 같다. 상상력을 발휘해 다른 사람의 삶에 공감할 수 없다면 진정한 인간 존재로서 서로 관계를 맺는 데에 실패한다. 특정한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감의 감정은 공적 판단에서 핵심이다.

 

‘공상’을 포기하는 것은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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