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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사 수험일기

세무사 1차 시험 끝

by Alcantara 2021. 5. 29.



약 3달 전 회계사 시험이 끝나고 곧바로 재정학 강의를 들으면서 세무사 시험을 준비했다. 3월 초~중순까지는 시간이 느릿느릿 가는 것 같더니 4월이 되면서 꽃이 화사하게 필 때부터는 시간이 참 빠르게 갔다. 재정학은 기본강의를 보름 만에 듣고 곧바로 객관식 교재로 공부했고, 4월부터 원가관리회계 연습 강의를 들으면서 전 과목을 공부했다. 모의고사 몇 번을 보다 보니 5월이 됐고 재정학과 원가관리회계 실력이 어느 정도 쌓인 후부터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해서 그때쯤 되니 세무회계 연습서를 더 볼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세법학 기본강의를 들었어야 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그 시간을 아껴서 재정학과 상법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 덕에 오늘 시험을 잘 보고 온 것인 듯하다.

6번의 모의고사 내내 300점을 웃돌았던지라 안정적으로 합격하겠다는 생각이 머리로는 들었지만 시험이 다가오면서 마음이 많이 불안했다. 절대평가에 평균 60점만 넘으면 합격하는 시험, 어느 한 과목에서 다소 실수가 있더라도 다른 과목에서 충분히 메꿀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음에도 시험 직전에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다. 시험이 있는 주에는 산책을 나가지 않고 집에서 적당히 운동하다가 이틀 전부터 전범위를 빠르게 훑으려고 했는데 가슴이 두근거려서 도저히 책상 앞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훨씬 이른 시간, 이전에는 가보지 않았던 코스로 산책을 다녀왔다.

목요일은 그렇게 한 시간을, 시험 전날인 금요일에는 한 시간 반을 내리 걸었다. 내일이 시험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씨가 너무 좋았다. 한 주를 마무리하고 다가올 주말을 기다리며 화창한 날씨의 금요일 오후를 즐기던 때가 분명 있었을 텐데, 어제의 내게는 오늘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렇게 공기가 상쾌하고 날이 맑은데. 이렇게나 날씨가 좋아도 되는 걸까? 내 인생에서는 행복한 금요일이 마지막이고 그다음 날은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하루아침에 벼락처럼 해피엔딩을 맞고 허무하게 끝나는 동화 속 이야기처럼 어제와 오늘이 너무나 달라 이질감을 쉽사리 떨칠 수 없었다.

귀여운 오리 가족

집에 돌아와서 책을 다시 펼쳤지만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회계사 시험 직전에는 전 범위를 빠르게 보기 위해 어떻게든 모든 책을 미친 듯이 훑어봤는데 이제는 그럴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는 이제 와서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충분히 합격할 수 있으리라는 약간의 자만심이 있었던 것 같다. 대충 하루를 마무리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여러 번 깼다. 새벽 즈음인 줄 알았는데 밤 열두시 40분이었다. 한참을 뒤척이다 겨우내 잠들었고 뒤이어 깼다. 새벽 2시 30분. 그러다 다시 눈을 떠보니 6시 29분이었다. 설정했던 알람을 해제하고 시험장에 갈 준비를 했다. 전날 밤 사놓은 죽을 데워 먹었는데 이번에는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세 달 전 회계사 시험날에는 절반도 먹지 못했었는데.

전날 밤까지 그렇게 떨렸는데 막상 시험 당일이 되니 그리 떨리지 않았다. 하필 전날 에어팟이 고장 나는 바람에 이어폰을 꼽고 시험장에 간 건 좋지 않았다. 오랜만에 이어폰 줄이 거추장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시험장에 도착해 좌석을 확인하니 맨 앞자리였다. 정말 다행이었다. 내 시야에서 다리를 떠는 놈이 없겠구나. 그런데 내 자리에 누가 가방을 올려놨다. 어떤 멍청한 새끼인가. 얼빠진 놈의 가방을 들어 뒷자리에 두고 내 가방을 올렸다.

시험 시간이 다가왔고 A형 문제지를 받았다. 두 번의 회계사 시험에서는 B형을 받았는데. 문제가 뒤죽박죽 섞이지 않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으니 감독관이 내 앞에서 멍하니 서있었다. 잠깐 자리를 옮긴 듯하다가도 금방 앞에 와서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다. 아니 감독관님 내 눈앞에서 얼쩡거리지 마세요라는 눈빛을 몇 번 보냈는데 텔레파시가 먹히지 않았다. 뒤이어 손을 들었고 눈이 마주치자 내 앞에서 꺼지라는 손짓을 했다. 젊은 놈이 싸가지가 없어서 미안합니다. 그래도 이해 좀 해주세요. 착한 감독관님은 내 뜻을 잘 알아들은 덕에 교단 앞 의자에 앉아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1교시 재정학은 적어도 푸는 동안에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아리송한 문제는 그냥 넘겨버리고 쉬운 문제는 너무 쉽다며 안도하고 풀었다. 모르겠다 싶은 문제는 진작에 아무 번호나 찍고 마킹까지 했다. 세법으로 넘어가니 국세기본법부터 느낌이 이상했다. 물음의 단서에 자꾸 판례를 고려하라고 하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뒤이어 사례형 문제가 나왔는데 읽고 싶지도 않았다. 국세징수법도 세한 느낌이 들었다. 조세범처벌법도. 기타세법을 전날까지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기분이 매우 이상했다. 적당히 뒤를 넘겨보니 법인세법 계산문제가 가득했다. 어렵겠구나 싶었지만 그러려니 하고 소득세 문제를 풀었다. 다행히 크게 어렵지 않았고 계산문제도 해리 포터의 9와 4분의 3 승강장 같은 긴가민가한 답을 내게 하는 문제도 없었다. 여러 사례를 제시하고 총합계액을 묻는 문제는 과감히 건너뛰었다. 부가가치세법도 다행히 무난했다. 국제조세조정에관한 법률문제도 배운 범위에서 나온 것 같아 뜨거운 심장이 이끄는 대로 선지를 골랐다. 그렇게 1교시가 끝났다.

2교시를 기다리며 자리에 앉아 있는데 큰 문제가 발생했다. 아까부터 내 뒤에서 계속 목 가다듬는 호로자식이 쉬는 시간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내내 큼 큼 거리는 것이었다. 직감이 왔다. 아 이새끼 하루 종일 이러겠구나. 스터디카페 같았으면 도사님도 울고 갈 최고의 부적인 포스트잇에 정중하게 자제해달라고 써서 몰래 붙여놓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놈은 자리를 뜰 생각이 없어 보였고 주위에는 나와 그놈밖에 없었기에 혹시 자리를 비우더라도 용의선상에 오를 게 뻔했다. 슬프게도 내가 자리를 떠서 복도에 한참 있다 다시 돌아왔다.

그렇게 2교시는 시작됐고 평소처럼 상법 문제를 풀었다. 상대적으로 긴 변호사시험 문제, 법원직, 법무사, 회계사 문제를 풀다가 단답형 문제를 푸니 눈이 쾌적했다. 사례를 제시하고 법리를 풀어내 필요한 조문을 끄집어내는 문제와 씨름하다가 틀린 그림 찾기를 하게 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5문제 정도 아리송한 게 있었지만 대충 찍고 마킹까지 끝냈다. 남은 시간 60분.

일단 시간이 충분하니 마음에 여유가 꽤 생겼다. 느긋하게 재무회계부터 문제를 풀었고 시간이 좀 걸리겠다 싶은 문제는 일단 건너뛰었다. 대강 훑어보니 사업결합 문제에서 영업권을 구하라고 나온 게 있었다. 한 문제 챙겼구나. 뒤에는 이상한 리스 문제가 있었다. 리스 변경 문제였는데 참 별 걸 다 내는구나 싶었다. 눈 깔고 지나갔다. 그리고 매출채권 양도 어쩌구 문제도 있었다. 이건 또 뭐람. 이번에도 눈을 또 깔고 지나갔다. 그렇게 2/3는 풀고 1/3은 남긴 상태에서 원가관리회계 문제를 풀었다. 평소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리는 문제가 꽤 있네. 전부원가 초변동원가 차이를 묻는 문제에서 재공품 재고까지 고려하는 게 있었다. 다행히 공부해둔 내용이라 풀고 넘어갔다. 표준원가 이론문제는 좀 어려웠다. 학원 모의고사든, 집에서 푼 모의고사 교재에서든 15문제 중에서 12~13문제는 가벼운 마음으로 확신을 갖고 풀었는데 시험은 좀 달랐다. 한 바퀴를 돌리고 나니 내가 푼 원가 문제가 9문제였다. 15문제 중에서 9개밖에 못 풀었어? 아니지 오늘은 원가가 25번부터 시작이니까 16문제 중에서 9개를 푼 거지.

다행히 여전히 3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고 재무회계부터 다시 훑으며 풀 만한 문제를 건드렸다. 건너뛴 문제 중에서 대강 절반은 해결한 것 같았다. 시간이 15분가량 남았는데 40문제 중에서 10문제는 손을 대기 어려워 보였다. 일단 마킹을 하고 대충 아무 번호로 찍은 다음 하나씩 다시 파고들었다. 3분 정도 남으니 마킹 실수는 없는지, 수험 번호는 제대로 쓴 건지 궁금해서 문제는 더 이상 풀지 않고 마킹 확인만 했다. 그렇게 시험 끝.

점심에 끝나는 게 정말 좋았다. 그래도 평균 60은 넘겼겠지 하는 마음으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갔다. 2시에 가답안이 나오니 제대로 쉴 시간도 없었다. 지난 시험이 끝난 직후와 마찬가지로 책장을 정리하고 먼지를 전부 닦았다. 두 시가 되자 가답안이 올라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점수를 매겼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재정학 72.5

세법 65

회계학 80

상법 85


정말 다행히도 합격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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