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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A 수험일기

수험 블로그의 결말

by Alcantara 2019. 2. 10.

주인이 작정하고 여러 주제를 같은 비중으로 포스팅하지 않는 이상 자신의 관심사가 그 블로그를 대표하는 주제가 되기 마련이다. 나 또한 책과 문구에 가진 애정을 글로 풀어내고자 시작한 블로그가 어느새 주객이 전도되어 CPA 수험생활을 남기는 블로그로 변했다.
내 글에 신경 쓰는 만큼 다른 사람의 생각은 어떤지 알고 싶어 교재나 강의, 수험 후기를 찾아다니다 보니 나도 다른 수험 블로그를 여럿 알게 되었다. 회계사가 되겠다는 같은 꿈을 안고 수험 생활을 기록하는 블로거가 있는가 하면, 비교적 최근에 합격해서 수험 후기나 공부법, 회계사의 삶을 기록하는 블로거도 있다.
회계사가 되겠다는 여정 속에서 전자는 현재 진행 중인 주인공이고, 후자는 해피엔딩을 맞은 주인공인 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험 또한 대부분이 떨어지는 시험인지라, 불합격한 수험생의 블로그도 당연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봐야 할까?
불합격자의 블로그에 담긴 수험 생활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내가 합격하지 못했을 때 그들처럼 과거의 기록을 온전히 남겨놓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이야기의 구성상 기승전결 중에서 결에 해당하는 시험 결과가 좋으면 그간 겪었던 어려움도 감동적인 스토리가 된다. 공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던 자신만의 가정사 혹은 아무리 공부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서 절망감을 느꼈던 이야기는 합격 후에는 고난과 역경을 딛고 우뚝 정상에 올라간 주인공의 스토리를 완결짓는 발판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합격하지 못한다면 그간의 이야기가 아무리 아름답고 당당하더라도 좋아 보이기 쉽지 않다. 타인이 보기에는 실패자의 넋두리처럼 보이지는 않을지...
나는 이 공간에 최대한 내 속마음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려고 하지만 남에게 공개되는 블로그의 특성상, 이왕이면 좋은 이야기를 더 담으려고 하는 편이다. 합격할 수 있다는 믿음을 안고 공부를 하지만 나도 평범한 수험생인지라 늦은 나이에 진입했다는 점이나, 실패했을 때 떠안을 리스크가 종종 떠올라 불안감을 느끼는 날이 있다. 다만 공부에 매진하기 위해 그런 생각을 떨쳐내려고 하는 것뿐...

김현식T가 강의에서 합격, 불합격은 시험 당일이 아니라 오늘 만든다고 했는데, 지난 하루하루는 합격과 불합격 중 어떤 것을 더 많이 만들었을까? 글쎄, 불합격보다는 합격 도장을 더 많이 찍어왔다고 생각하지만... 어디까지나 내 바람일 뿐이니 확실하지는 않다.
당연히 가정이고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지만... 만약 내가 시험에 끝끝내 붙지 못하고 포기한 뒤 다른 길을 찾아 나서게 된다면 지금껏 남겨놓은 수험 생활을 지우지 않고 내버려 둘 수 있을까? 아마 그러지 못할 것 같다. 하다못해 지우지는 않더라도 비공개로 돌려버리고 일기만 혼자 보관하지 않을까. 내가 실패한 과거의 기억과 흔적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오랜 기간 수험 공부를 했지만 합격하지 못했고 지금은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용기는 없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더 깊게, 충실히 느끼고 싶어서 일기를 쓴다. 결과와 무관하게 20대 후반을 맞이하는 이 시간을 온전히 붙잡고 싶은 마음에 쓰는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 이 시기를 돌아봤을 때 쓴웃음을 짓지 않고 이때 참 열심히 살았지, 하면서 추억에 젖고 싶다.

시험에 합격해야만 할 이유가 오늘 또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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